‘더불어 숲’ 이란 책 이름이 좋다. 마음 한 켠 따뜻해지고 .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세계의 역사 현장을 찾아서 20세기를 되돌아보고 21세기를 전망하는 기획으로 집필한 책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그곳에서 독자에게 엽서를 띄운다는 컨셉으로 진행 된다. 여행을 하며 쓴 글이지만 여행지의 묘사나 사진, 관광 정보에 대한 글이 아닌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여 느끼고 시사한 바를 담담하게 적어나가며 독자와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총 46 챕터의 내용의 연계성이 크지 않은 단락들로 구성되어 있어 한 단락씩 짧은 호흡으로 읽어가기 편하다. 다만 문맥의 의미나 단어의 모호성이 읽기에 거북한 감이 있다. 쉬운 단어들로 풀이가 가능할 법한 문장들도 읽기 어려운 구조로 쓰여져 있는 부분이 많이 눈에 띈다. 본인 개인적인 소양 부족일 듯 하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구절을 적어보았다.
P135.
“사상은 하늘을 나는 새들의 비행처럼 자유로운 것이다.”
분단이란 땅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늘을 가르려고 하는 헛된 수고임을 깨닫게 하는 글입니다. 누군가 한글로도 적었습니다.
“우리도 하나가 되리라.”
P148.
혁명이란 당신의 말처럼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만들어내려는 미지의 작업입니다. 따라서 인식의 혁명이 먼저 요구됩니다. 낡은 틀을 고수하려던 특권층이나 그 낡은 틀의 억압에 항거하는 농민들의 인식은 확실한 그림으로 나타나고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특권층이나 농민의 인식과는 달리 이 혁명을 이끌었던 혁명파의 구상은 당신의 말처럼 관념적으로 선취된 이상과 그 이상에 도취되고 있는 정열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낡은 틀이 와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틀에 대한 분명한 구상이 마련되지 않고 있는 상황. 이것이 진정한 위기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됩니다.
P180.
화이트와 블랙은 단순히 색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 선과 악, 희망과 정말의 대명사였습니다. 당신의 말처럼 희망은 절망의 땅에 피는 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희망이 다른 누군가의 절망이 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희망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나는 길고 어두운 갱도에 묻힌 그 엄청난 매장량에 놀라기에 앞서 섭씨 60도의 뜨거운 열 속에서 암벽을 깨뜨리고 있는 흑인 소년들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환희의 동상과 어둠 속의 흑인 소년을 함께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누군가의 환희가 다른 누군가의 비탄이 되고 있는 경우에도 우리는 그것을 환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어두운 지하 갱도에서 마음이 돌처럼 무거워집니다.
P205.
사람들의 사고와 판단에 최후까지 끼어들어 끈질기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열등감과 오만입니다. 심지어 옷 하나를 선택하는 데에도 끼어들고, 단어 하나 선택하는 데에도 끼어드는 것이 열등감과 오만이라는 자의식입니다.
P234.
꿈은 우리들로 하여금 곤고(困苦)함을 견디게 하는 희망의 동의어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꿈은 발 밑의 땅과 자기 자신의 현실에 눈멀게 합니다. 오늘에 쏟아야 할 노력을 모욕합니다. 나는 이것이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우리 세기가 경영해온 꿈이 재부(財富)와 명성과 지위와 승리로 내용을 채우고 있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꿈의 유무에 앞서 꿈의 내용을 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P243.
태양을 연장하기 위하여 행했던 인신 공양은 우매하고 잔혹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 우매함과 잔혹함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는 혹시라도 자기의 세계를 연장하기 위하여 서슴지 않고 바치는 제물은 없는지 돌이켜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인을 고루 비추는 태양이 아니라 사사로운 태양을 연장하기 위한 희생이라면, 그리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희생으로 삼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P412.
공자는 자기 자신을 일컬어 ‘배워서 아는 정도의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란 곤경을 당하고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 이라고 했습니다. 생각하면 우리를 절망케 하는 것은 비단 오늘의 곤경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거듭거듭 곤경을 당하면서도 끝내 깨닫지 못했던 우리들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표 진보 지식인으로 손 꼽히는 신영복 교수의 날카로운 통찰과 인문학적 소양을 접할 수 있는 맛있는 책이다. 완독 후에도 책장 손 가까운 곳에 꼽아놓고 눈길 갈 때 꺼내어 읽으면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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