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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읽어보기

나카노네 古만물상 - 가와카미 히로미(오유리 옮김, 은행나무)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가와카미 히로미가 쓴 소설이다, 라고는 하지만 작가나 책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알 지 못하였다. ‘나카노네 古만물상’ 이라는 책 이름과 약간 바랜 듯 누런 책 표지에 끌려 손이 간 책이다.
나카노 씨가 운영하는 만물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이다. 나카노, 마사요, 다케오, 그리고 히토미. 잔잔한 시냇물 흘러내리 듯 펼쳐지는 그들의 에피소드가 담담하게 이어진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혹은 기-승-전-결)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 굵직한 사건도 없고 극중 인물 간의 갈등도 크지 않다. 그런데도 내용의 구성이 좋고 작가의 발랄하고 통통 튀는 문체가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 넣어준다. 빠른 속도감, 손을 땔 수 없는 몰입감, 머리 속을 복잡하게 하는 문제 제기 이런 건 찾아 볼 수 없다. 그것이 이 책의 진짜 매력인 듯 하다. 주인공 들의 사랑이야기가(히토미-다케오, 나카노-사키코, 마사요-마루야마) 글 전반에 나타나는데 결코 뜨겁거나 노골적이지 않다. 따스하고 잔잔히, 때로는 애잔하게 우리들이 그렇듯 그들도 평범히 사랑한다. 그래서 더욱 공감이 된다.

 

책 속 한 구절

P 99
다케오가 놀러오면 이걸 신고 만화 속 주인공 흉내라도 내볼까? 근데 주인공 누구? 이런 저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나는 가게로 발길을 옮겼다.

이런 시답잖은 얘기들이 이 책을 구성하는 내용들이다. 가와카미 히로미는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들에 생동감을 버무려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어느 새 나카노네 고만물상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p 112
싫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많이 있다. 그 가운데 ‘좋다’에 가까운 ‘싫지 않은 사람’ 이 어느 정도 있고, 반대로 ‘싫다’에 가까운 ‘싫지는 않은 사람’ 이 어느 정도 있다.그렇다면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 걸까,

문장 그대로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는 그들에게 그저 ‘싫지 않은 사람’ 일 뿐 아닐까. 나를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p 195
이놈의 휴대폰, 꼴도 보기 싫어! 도대체 어떤 인간이 이 따위 물건을 발명한 걸까. 어떤 장소,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통화 가능한 전화라는 건, 연애하는 데 있어서 –원만히 진행되는 연애든 삐걱거리는 연애든- 암적인 존재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다케오와 연락이 되지 않자 히토미가 애꿎은 휴대폰을 가지고 투덜댄다. 사랑하는 사람과 연락이 되지 않을 때의 감정을 참 재미있게 묘사했다.

p 232
히토미는 참 사람이 상냥해. 그렇게 말해주니 내 마음이 참 좋아.

문장이 좋다. 누군가에게 이런 말로 내 진심을 표현해 본 적이 있었던가?

공원 벤치나 창문가 등에서 봄 바람을 맞으며 요즘 읽기 좋은 소설이다. 가슴 두근거리는 봄바람을 맞으며 한 템포 쉴 여유를 선사해준다. 무거운 추리소설이나, 머리 아픈 경제서, 어려운 교양서적은 잠시 접어 두고 복잡한 생각 할 필요 없이 친구가 들려 주는 듯한 히토미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무언가 잔잔히 가슴속에 여운이 남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카노네 고만물상 (보급판 문고본) - 6점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오유리 옮김/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