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4

내 심장을 쏴라 - 정유정 (은행나무)

는 2009년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정유정 작가를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이민기, 여진구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이 될 만큼 인기를 얻으며 작가로서의 커리어에 단단한 초석을 세우게 된다. 그녀의 작품은 , 로 먼저 접하였었다. 스산하고 강렬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작품들에 비해 밝고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책 표지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뜨거운 감동과 생에 대한 각성이 꿈틀대며, ...] 로 시작되는 표어는 약간 민망하게 느껴진다. 간호대학에서 정신과학을 공부한 작가가 직접 폐쇄병동에서 체험하고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희망병원을 창조했다. 폐쇄병동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을 잘 묘사했다. 만식씨, 김용, 거리의 악사, 우울한 청소부 등 개성있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소..

28 - 정유정 (은행나무)

원인을 알 수 없는 인수공통전염병으로 무간지옥이 되어버린 화양시에서 28일동안 펼쳐지는 일을 담아낸 이야기이다. 에볼라 바이러스를 능가하는 전염력과 치사율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는 화양시를 외부와 철저히 차단시키며 고립한다. 2+8='0', 즉 모든 희망이 사라진 화양시를 표현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대로 무법지대가 된 화양시에는 절망이 들끓고 있다. 사람과 개 사이에 벌어지는 몇개의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몇 해 전, 구제역 소동으로 생매장 당하는 돼지를 보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는 돼지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반려견에게 재앙이 닥쳤을 경우 우리의 모습을 그려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비슷하게 표현한 듯 하다. p.210 ~ p.211 이 개는 당신의 '마리'야. 마리..

7년의 밤 - 정유정 (은행나무)

대한민국 외딴 곳, 사람들의 발길조차 뜸한 세령마을에서 한 소녀가 실종된다. 평소 친부에게 잦은 구타와 '교정'을 받던 그 소녀는 며칠 후 세령호에서 목뼈가 부러져 죽은 채 발견된다. 무면허에 음주운전을 하다 세령을 치어 버린 최현수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세령의 목을 꺽고 세령호로 던져버리며 돌아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진다. 잘못된 방법으로 가족들을 '교정' 해 온 오재영. 딸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 슬픔보다 자신의 소유물을 박탈당했다는 분노를 느끼며 복수를 꾀한다. 딸의 복수를 꿈꾸는 자와 아들의 목숨을 지키려는 자 사이에서 살떨리는 눈치게임이 벌어진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표현할 때 '압도적인 서사'와 '리얼리티'라는 문구를 쓴다. 그 만큼 힘있는 필력과 치밀한 조사로 펼쳐놓은 무대는 감탄이 ..

나카노네 古만물상 - 가와카미 히로미(오유리 옮김, 은행나무)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가와카미 히로미가 쓴 소설이다, 라고는 하지만 작가나 책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알 지 못하였다. ‘나카노네 古만물상’ 이라는 책 이름과 약간 바랜 듯 누런 책 표지에 끌려 손이 간 책이다. 나카노 씨가 운영하는 만물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이다. 나카노, 마사요, 다케오, 그리고 히토미. 잔잔한 시냇물 흘러내리 듯 펼쳐지는 그들의 에피소드가 담담하게 이어진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혹은 기-승-전-결)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 굵직한 사건도 없고 극중 인물 간의 갈등도 크지 않다. 그런데도 내용의 구성이 좋고 작가의 발랄하고 통통 튀는 문체가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 넣어준다. 빠른 속도감, 손을 땔 수 없는 몰입감, 머리 속을 복잡하게 하는 문제 제기 이런 건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