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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읽어보기

내 심장을 쏴라 - 정유정 (은행나무)

<내 심장을 쏴라>는 2009년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정유정 작가를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이민기, 여진구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이 될 만큼 인기를 얻으며 작가로서의 커리어에 단단한 초석을 세우게 된다. 그녀의 작품은 <7년의 밤>, <28> 로 먼저 접하였었다. 스산하고 강렬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작품들에 비해 밝고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책 표지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뜨거운 감동과 생에 대한 각성이 꿈틀대며, ...] 로 시작되는 표어는 약간 민망하게 느껴진다.

 


간호대학에서 정신과학을 공부한 작가가 직접 폐쇄병동에서 체험하고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희망병원을 창조했다. 폐쇄병동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을 잘 묘사했다. 만식씨, 김용, 거리의 악사, 우울한 청소부 등 개성있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소설 속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탈출을 감행하고 다시 붙잡혀오고를 반복하며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그들이지만 희망병원 안에서 티격태격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네 모습과 별반 다를게 없다.
흐지부지 끝나버리는 후반 마무리 부분은 많이 아쉽다. 수명이 자유를 얻은채 희망병원을 떠나며 글은 마무리 된다. 캐릭터 간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은 채 갑자기 이야기가 끝나버린 듯 해 찜찜함이 남는다.
평생 자신을 옭아맸던 밧줄을 풀어버리고 각성을 하는 수명의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은 억지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외부요인으로 인해 책을 읽다가 접었다가를 반복하며 긴 호흡으로 읽지 못하였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만큼 몰입해서 읽지 못하였다. 그 때문에인지 많은 사람들이 느낀 감정을 공감할 없었던 걸까? 리뷰를 살펴보거나 주위의 평을 들어보면 칭찬이 많은 것에 반해 감동도 재미도 교훈도 임팩트 있게 느낀 것이 없었다.

p.167
수험생이 건넨 책을 받아 펼쳐봤다. 찢어진 책장들이 풀과 스카치테이프로 정성스레 붙여져 있ㅆ다. 구겨진 책장에는 다리미로 누른 흔적이 남아있었다. 목젖이 묵직해져 왔다. 서글픈 것을 본 탓이리라. 그가 책장과 함께 붙인 것, 다리미로 눌러 없앤 것. 그건 알코올 중독자이자 노숙자였던 한 남자의 희망과 절망이었다.
 
p.242
"미술요법 참여 자격은 다음과 같았다. 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자, 미술을 이해하려는 자, 미술을 이해 못해도 사랑은 하는 자, 미술을 사랑 안 해도 손가락은 달린 자, 손가락이 없어도 발가락은 있는 자. 풀을 바르고 붙여서 모 의류회사의 쇼핑백으로 재창조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미술이었다."
p.286
"난 순간과 인생을 맞바꾸려는 게 아냐. 내 시간 속에 나로 존재하는 것, 그게 나한테는 삶이야. 나는 살고 싶어. 살고 싶어서, 죽는 게 무서워서, 살려고 애쓰고 있어. 그뿐이야."
p.325
나는 진실에 얻어맞아 고꾸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진실은 내가 겁냈던 것만큼 거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내 그림자에 놀라 끝없이 달아났던 것인지도 모르고.
p.344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 된 소설이라고 소개한 작가는 소설을 완성하고서 답을 구했는지 궁금하다.
내 심장을 쏴라 - 6점
정유정 지음/은행나무